적립식 vs 거치식 — 간단 시뮬레이션으로 비교
여윳돈 500만 원이 생겼다고 해 볼게요. 오늘 한 번에 다 넣을까, 매달 100만 원씩 다섯 달에 나눠 넣을까. 적립식이냐 거치식이냐 하는 이 논쟁은 투자 커뮤니티의 단골 소재인데, 막상 “그래서 뭐가 더 좋은데?”라고 물으면 깔끔한 답이 안 나옵니다. 미래 가격을 모르는 이상 정답이 정해져 있을 수가 없거든요. 다만 두 방식이 각각 어떤 구조로 움직이는지는 얘기가 달라요. 이건 간단한 숫자 계산만으로 꽤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가격이 오르는 경우, 내리는 경우, 출렁이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경우 — 세 가지 시나리오를 놓고 평균 매입 단가가 어떻게 갈리는지 직접 계산해 봤어요.
용어부터 정리 — 적립식과 거치식
거치식은 목돈을 한 번에 넣고 그대로 두는 방식입니다. 500만 원이 있으면 오늘 전부 매수하고 끝. 적립식은 같은 돈을 일정 주기로 쪼개서 사는 방식이고요. 매달 100만 원씩 5개월에 걸쳐 사는 식이죠. 영어로는 적립식을 DCA(Dollar Cost Averaging), 거치식을 Lump Sum이라고 부르는데, 이름이 힌트예요. 적립식의 핵심은 ‘평균 단가(Cost Averaging)‘를 만들어 가는 데 있습니다.
은행 적금의 ‘적립’과 적립식 투자의 ‘적립’은 돈을 나눠 넣는다는 겉모습만 같지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적금은 원금이 보장되고 이자율이 확정돼 있는 반면, 적립식 투자는 매수하는 달마다 가격이 다르고 원금 손실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확정 이자 상품끼리 뭐가 나은지가 궁금한 거라면 적금 vs 예금 vs 파킹통장 — 목적별 선택 가이드가 그 얘기고, 내 적금 이자가 실제로 얼마 붙는지는 예적금 이자 계산기에 넣어 보면 바로 나옵니다.
시뮬레이션 설계 — 매달 100만 원 vs 한 번에 500만 원
조건은 일부러 단순하게 잡았습니다. 어떤 ETF가 첫 달에 1주 10,000원. 거치식은 첫 달에 500만 원을 전부 매수해 500주를 확보하고, 적립식은 매달 100만 원씩 5개월 동안 그때그때 가격으로 삽니다. 수수료와 세금은 뺐어요. 구조만 보는 게 목적이라서요. ETF라는 상품 자체가 낯설다면 ETF란? 주식과 펀드 사이를 먼저 읽고 오시면 이해가 빠릅니다.
적립식에서 기억할 규칙은 단순합니다. 매달 ‘같은 금액’을 넣는다는 것. 이 단순한 규칙이 재미있는 결과를 만드는데, 가격이 싸진 달에는 자동으로 더 많은 수량을, 비싸진 달에는 더 적은 수량을 사게 됩니다. 100만 원으로 10,000원짜리는 100주를 사지만, 8,000원으로 떨어지면 같은 돈으로 125주가 들어와요. 내가 시세를 보고 “지금 싸니까 더 사자”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같은 금액을 넣는 행위만으로 수량이 저절로 조절되는 겁니다. 적립식 구조는 이 자동 조절 장치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상승·하락·횡보, 세 시나리오 평균 단가 비교
각 시나리오의 월별 가격 흐름과 그 결과로 만들어지는 평균 매입 단가를 표로 정리했습니다. 거치식은 어떤 시나리오든 첫 달 가격 10,000원이 그대로 평균 단가가 돼요. 첫 달에 전액이 들어갔으니 당연한 일이죠.
| 시나리오 | 월별 가격 흐름(원) | 거치식 평균 단가 | 적립식 평균 단가 | 5개월 차 가격 |
|---|---|---|---|---|
| 상승장 | 10,000→11,000→12,000→13,000→14,000 | 10,000원 | 약 11,832원 | 14,000원 |
| 하락장 | 10,000→9,000→8,000→7,000→6,000 | 10,000원 | 약 7,744원 | 6,000원 |
| 횡보장 | 10,000→8,000→10,000→12,000→10,000 | 10,000원 | 약 9,836원 | 10,000원 |
계산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매달 산 수량을 전부 더하고, 총 투자금 500만 원을 그 수량으로 나누면 끝이에요. 하락장 시나리오로 해 보면 매달 100주, 111.1주, 125주, 142.9주, 166.7주를 사서 합이 약 645.6주가 되고, 500만 원을 645.6주로 나눈 값이 평균 단가 약 7,744원입니다. 엑셀 없이 계산기만 두드려도 따라 할 수 있는 수준이에요.
표에서 읽어야 할 것들
상승장부터 볼게요. 여기선 거치식의 압승이고, 이유도 단순합니다. 가장 쌌던 첫 달 가격에 전액이 들어갔으니까요. 적립식은 점점 비싸지는 가격을 계속 따라 사느라 평균 단가가 11,832원까지 올라갑니다. 오르는 시장에서는 나눠 사는 행위 자체가 비용이라는 얘기예요.
하락장은 정반대입니다. 거치식은 10,000원이라는 단가에 통째로 묶여 있는데, 적립식은 싸질수록 많이 사는 구조 덕분에 평균 단가가 7,744원까지 내려와요. 5개월 차 가격이 6,000원까지 밀렸을 때 두 계좌가 감당하는 평가손실의 폭이 다르고, 이후 가격이 회복된다면 본전을 되찾는 지점도 크게 벌어집니다. 거치식은 10,000원까지 다시 올라와야 원금인데, 적립식은 7,744원만 회복해도 원금이니까요.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건 횡보장 행입니다. 시작도 10,000원, 끝도 10,000원인데 적립식 평균 단가는 9,836원으로 그보다 낮아요. 왜 그럴까요? 가격이 출렁이는 동안 싼 달인 8,000원에 더 많이 산 효과가, 비싼 달인 12,000원에 덜 산 효과보다 크게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변동성 그 자체가 적립식에는 평균 단가를 낮추는 재료가 된다는 뜻이에요. 다만 평균 단가가 낮다고 최종 성과까지 항상 좋은 건 아닙니다. 상승장 행이 이미 보여주고 있죠. 적립식 단가 11,832원은 거치식의 10,000원보다 한참 높지만, 5개월 차 가격이 14,000원이니 적립식도 이익은 이익이거든요. 단가 비교와 수익률 비교는 별개의 문제라는 점, 이건 구분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뭘 골라야 하나 — 구조로 판단하기
시뮬레이션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어느 쪽이 이긴다는 결론이 아닙니다. 각 방식이 어떤 종류의 위험을 짊어지는지, 그 성격이에요. 거치식은 ‘넣은 직후 하락’이라는 타이밍 위험을 통째로 지는 대신, 상승이 오면 전액으로 그 흐름을 받습니다. 적립식은 상승장에서 단가가 높아지는 비용을 내는 대신 타이밍 위험을 여러 달에 걸쳐 분산하고요. 어느 쪽도 공짜가 아니라는 게 핵심입니다.
실전에서는 돈의 성격으로 가르는 게 현실적이라고 봐요. 월급에서 매달 떼어 투자하는 돈은 애초에 목돈이 아니니 자연스럽게 적립식이 되고, 이미 손에 쥔 목돈은 전액 거치식과 몇 개월 분할 매수 사이에서 ‘넣자마자 크게 빠져도 팔지 않고 버틸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정하는 식이죠.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하지 못하면, 이론상 기대값이 어떻든 분할 쪽이 본인에게 맞는 답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참고로 미국 S&P500 지수를 꾸준히 모아 갈 계획이라면 매수 방식 못지않게 어느 시장에 상장된 ETF를 고르느냐에 따른 세금 차이도 성과를 가르니 S&P500 ETF 국내상장 vs 미국상장 세금 비교도 같이 읽어 두면 좋아요. 같은 지수를 추종해도 상품별 보수는 제각각이라, 매수 전에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 정보포털 파인에서 펀드·ETF 보수를 비교해 보는 습관도 도움이 됩니다.
저도 매달 나눠 사 보겠다고 자동 적립식 매수를 걸어 둔 적이 있는데, 설정만 해 놓으면 끝인 줄 알고 한동안 들여다보지도 않았어요. 나중에 계좌를 열어 보니 예수금을 안 채워 둔 달은 주문이 조용히 건너뛰어져 있더라고요. 매수가 자동이라고 돈 옮기는 것까지 자동은 아니라는 걸 그때야 알았습니다.
덧붙이면, 해외 장기 데이터에서는 거치식이 더 나은 결과를 낸 기간이 많았다는 분석이 자주 인용됩니다. 시장이 오른 기간이 내린 기간보다 길었다면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는 통계인데, 과거가 그랬다는 사실이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아니에요.
이 논쟁에서 정말 중요한 건 적립식과 거치식 중 승자를 정하는 게 아니라, 표에서 확인한 것처럼 내가 어떤 위험을 지고 어떤 비용을 내는 선택인지 알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이해 없이 남의 결론만 가져오는 게, 저는 이 논쟁에서 가장 손해 보는 포지션이라고 생각해요.
내일은 이 시뮬레이션을 실제 매수로 옮기는 첫 단계, “증권사 비대면 계좌 개설 — 단계별 정리”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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